
김태용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연출작 '원더랜드'은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2024년 개봉작입니다. AI 기술과 자가학습기술을 바탕으로 죽은 사람의 기억과 품성에 기반한 가상인간을 만들어내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중심으로, 탕웨이, 박보검, 배수지, 정유미, 최우식, 공유 등 화려한 출연진이 각자의 상실과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 원더랜드 AI와 이별 새로운 애도의 방식
원더랜드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현대인의 상실과 애도를 다루는 휴먼 드라마입니다. 영화 속 원더랜드 서비스는 죽거나 죽음에 준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의 기억과 품성에 기반한 가상인간을 만들어 화상 통화 형태로 만날 수 있게 합니다. 이 설정은 2024년 개봉 당시에도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AI 기술의 발전 방향을 반영한 것으로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탕웨이가 연기한 바이리의 이야기는 이러한 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싱글맘 바이리는 어린 딸 바이지아를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고, 자신의 어릴적 꿈이었던 고고학자로 설정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망 후 가상인간으로 구현된 바이리는 딸과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일상을 함께 하지만, 점차 사망 전 기억을 떠올리며 혼란을 겪고 딸을 찾아가려 하면서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기억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바이리의 어머니 화란이 보여주는 복잡한 감정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딸이 사망한 것을 알지만 딸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가상인간 바이리의 모습에 불안과 복잡한 심정을 느끼며, 서비스를 중단하고 싶어합니다. "누가 너희 엄마냐"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장면은 가상인간이 줄 수 없는 진짜 관계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결국 공항에서 바이지아가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다며 도망치는 사건을 통해 화란은 손녀가 이미 바이리가 죽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마지막 통화에서 바이지아는 "밤마다 자장가는 해줄 수 있지 않냐"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기술이 줄 수 있는 위로의 한계와 동시에 그 가치를 모두 느끼게 됩니다.
사용자가 언급한 것처럼 인공지능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정이 처음에는 신기하고 따뜻하게 다가오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너머에 숨겨진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더랜드 서비스는 새로운 형태의 애도 방식을 제시하지만, 결국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상실 그 자체이며, 기술은 그 과정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가상인간과 현실의 간극
박보검과 배수지가 연기한 정인과 태주의 이야기는 원더랜드가 제시하는 또 다른 핵심 주제입니다. 항공사 승무원 커플인 두 사람은 태주가 모종의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후 정인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정인은 태주를 지구궤도에 나간 우주선에서 근무하는 가상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어 매일 우주인 태주와 영상통화를 하며 일상을 함께 합니다. 아침마다 모닝콜로 하루를 시작하고, 공항 내에서 이동 중에 같은 남자 승무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아도 태주에게 허락을 받고 심지어 소개까지 시켜주는 모습은 가상인간과의 관계가 얼마나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현실의 태주가 기적처럼 깨어나면서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뇌를 다쳐서 성격과 태도가 변한 태주는 정인이 기억하는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투명유리가 있는지 모르고 머리를 강하게 박는 행동, 스토브에 끓인 물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 붓는 장면, 낯선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는 모습 등은 정인에게 큰 혼란을 줍니다. 정인은 의사를 찾아가 "태주가 바뀐 것 같다"며 상담하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친절하고 세심한 우주인 태주와 낯설고 불완전한 현실의 태주 사이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사용자가 언급한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밝고 다정한 모습과 실제 현실에서 깨어난 뒤 낯설게 변해버린 사람 사이의 간극"은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정인이 홀로 클럽을 다니고 술을 마시며 원더랜드 서비스를 켜 우주인 태주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며 현실의 태주를 멀리하게 되는 장면은 가상의 완벽함이 현실의 불완전함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집이 불타는 사건 이후 태주가 "전에 같이 가려 했지만 못 갔던 바르셀로나를 같이 가자"며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정인이 황당함과 동시에 화를 내는 장면은 두 사람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결국 정인은 태주에게 우주인 태주와 전화를 받게 하고, 태주와 우주인 태주가 서로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우주인 태주가 "누구시냐"면서 태연하게 묻고 태주는 충격을 받곤 아무 말도 못하는 이 장면은 가상과 현실의 충돌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정인은 태주를 비행기에 태우지만 태주는 끝내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고, 바르셀로나에서 돌아온 정인은 과거 즐겁게 데이트 했던 장소에서 태주와 화해를 합니다. 이는 불완전하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휴먼드라마로서의 깊이
원더랜드는 바이리와 정인-태주의 이야기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휴먼드라마로서의 깊이를 더합니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연기한 원더랜드 회사의 창업자 해리와 직원 현수의 이야기는 이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조차 같은 상실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해리는 자기 부모가 사망하자 부모를 가상인간으로라도 되살려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원더랜드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부모님을 삭제 후 다시 만들었을 때 새로 만든 인물이 삭제 전 인물과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가상인간이 결코 원본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다는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는 대목입니다.
현수의 이야기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가출했다고 알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던 현수는 조만간 사망할 예정이라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이용식이라는 고객이 자신의 친부일지도 모른다는 정황을 발견합니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 안심하지만 해리의 "형이랑은 아버지가 다르지 않았냐"는 반문에 다시 혼란스러워 하고, 결국 고민 끝에 원더랜드에 있는 용식에게 전화를 걸어 탁구를 즐겁게 칩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엄마를 용식에게 소개시켜주고, 엄마가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봅니다. 이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단순히 죽은 자를 만나는 것을 넘어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인 정란과 손자 진구의 이야기는 원더랜드 서비스의 어두운 면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체험판 느낌으로 구현해 낸 죽은 손자 진구를 보고 바로 빠져든 정란은 진구가 요구하는 비싼 옷과 자동차를 사주기 위해 늙고 병든 몸으로 투잡까지 뛰다가 결국 과로사 합니다. 다른 가상인간들과 달리 점점 이기적이고 물욕에 빠진 모습을 보이며 할머니에게 무례하게 구는 진구의 모습은 자가학습기술에 기반한 가상인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해리가 정란이 사망했다고 진구에게 알리고 서비스를 해지하는 장면은 가슴 아프지만 필요한 결말이었습니다.
공유가 연기한 성준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원더랜드 속 가상인간이지만 다른 가상인간들과 달리 원더랜드 회사가 시스템의 유지 및 보수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인간으로, 시스템 내부의 에러를 발견하여 고치는 프로그램의 인간형 모습입니다. 그런데 은근히 가상인간 바이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듯 보이고, 바이리가 혼란해할 때 접근해 대화를 나누며 안심시키려 하고, 바이리가 모래폭풍을 뚫고 나아가다 차가 꺼지는 위기를 맞을 때 도움과 희생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합니다. 이는 가상인간조차 감정과 연대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사용자가 말한 것처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그 사람의 완벽한 데이터가 아니라 투박하고 불완전한 실제 온기"라는 깨달음은 이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