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입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경쾌한 액션과 사회 비판이 조화를 이룬 이 영화는, 법 앞에 평등하지 못한 현실을 통쾌하게 뚫어내는 정의의 한 방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은 균형감이 돋보입니다.
영화 베테랑 조태오 악역의 매력
영화 베테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조태오입니다. 유아인 배우가 연기한 이 신진물산 재벌 3세는 2010년대 한국 영화 속 악당 중 최고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조태오라는 캐릭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의 배경을 최소화했다는 점입니다. 악역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악역이 될 만한 사연을 제공하여 납득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악으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유아인 배우는 촬영 초반 류승완 감독에게 "그냥 나쁜 놈인데 별다른 설명 없이 나쁜 놈으로 가죠"라고 제안했고, 이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베테랑은 철학적인 메시지보다 가볍고 경쾌한 오락 영화를 지향했기에, 캐릭터의 긴 배경 설명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조태오의 배경을 최소화하고 악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선과 악이라는 명확한 구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둘째, 무례함과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결합입니다. 조태오는 파티에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자신을 얕보는 경호원에게 과격한 폭력을 가하며, 배기사에게 끔찍한 굴욕을 주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흉포함을 드러냅니다. 더 소름 돋는 것은 이런 악행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의문의 친절입니다. 배기사의 아이에게 자동차를 선물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의 탑승을 권유하는 장면은 겉으로는 선의처럼 보이지만, 관객은 이것이 빈 껍데기일 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성이 그를 더욱 악랄하게 만들었습니다. 조태오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관객에게 어떠한 선처의 여지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한국 영화사에 남을 악역이 된 이유입니다.
죄의식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서도철의 한 방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부와 권력 뒤에 숨어 인간성을 상실한 절대 악의 표상인 조태오는,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갑질 문화와 정경유착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서도철의 정의감과 이상적 캐릭터성
영화의 주인공 서도철은 강력반 베테랑 형사로, 황정민 배우의 열연으로 친근하면서도 믿음직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서도철이라는 인물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정의감을 대변하며, 우리가 경찰에게 기대하는 이상적 요소들의 집합체입니다.
첫째, 작중 최강자급의 무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서도철은 어지간한 악당들과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고차 절도조직을 검거하는 과정이나 전 소장과의 추격전에서 드러나는 그의 전투력은 관객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조태오와 벌이는 혈투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화려한 무술 액션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종합격투기를 배운 조태오와 세계관 내 최고의 무력 소유자인 서도철이 맞붙는 이 장면에서, 서도철은 정당방위를 위해 초반에 일부러 맞아주다가 조건이 성립되자 비로소 제대로 한 판 붙습니다. 이런 무력은 선역이라는 그의 위치와 결합되어 강한 카타르시스를 발산합니다.
둘째, 사건에 대한 의무감과 정의로운 태도입니다. 서도철은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명령이나 다른 관할의 사건이더라도 의무감을 느끼면 그 사건을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배기사의 투신 사건이 자살로 처리되려 할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신진물산으로 찾아갑니다. 친한 기자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시키려 하고, 수사가 막힐 때도 팀원들과 함께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사를 이어갑니다. 막내 윤형사가 전 소장과의 충돌에서 칼에 찔리자 강촌경은 "우리 막내 수술대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사주한 놈 여기다 데려다 놓아"라며 암암리에 수사를 허락합니다. 이런 모습은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의 이상적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개인이 조직을 건너뛰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베테랑은 픽션이기에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줄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덮으려 할 때 "내가 책임진다"며 앞장서는 형사들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어른과 공권력의 표상처럼 느껴집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던 싸움이 결국 승리로 끝나는 과정은 보는 내내 가슴 답답한 현실을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실화 모티브와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
놀랍게도 베테랑은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참고한 대표적인 사건은 2010년에 있었던 최철원 전 대표의 맥가 폭행 사건입니다. 최철원 전 대표는 본인 회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시위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 후,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한 대당 100만원"이라 말하며 시위자를 폭행했다고 합니다. 이 폭행 과정이 영화에서 배기사가 겪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이외에도 2007년 한화 재벌 3세 보복 폭행 사건 등 다양한 사건을 참고하여 영화를 구성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탁월하게 해내는 감독입니다. 소재를 극적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넣는 방식이 돋보이며, 소재에 너무 몰입하지 않는 점도 장점입니다. 실화를 다루다 보면 소재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개연성이나 재미를 포기하고 소재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류승완 감독은 이 선을 잘 지킵니다. 베테랑뿐만 아니라 최근 개봉한 모가디슈에서도 이런 장점이 드러납니다.
류승완 감독은 스턴트맨, 그중에서도 무술 스턴트맨으로 영화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에서 화려한 무술 액션이 돋보입니다. 베테랑도 마찬가지로 숨막히는 추격전과 격투 장면이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특히 마지막 서도철과 조태오의 혈투는 류승완스러운 연출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자 약에 취한 채 서도철에게 돌진하는 조태오, 정당방위를 위해 초반에는 수비적 태도만 취하다가 조건이 성립되자 제대로 한 판 붙는 서도철의 모습은 치열한 대결의 백미입니다. 누적된 상처 때문에 결판을 내기 쉽지 않고 결국 미스봉이 범인을 잡는 장면까지, 단순하고 직선적인 스토리에 적절한 반전이 더해진 웰메이드 액션입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경쾌한 호흡으로 풀어내어,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준 참 고마운 작품입니다. 화려한 카 체이싱과 격투 장면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베테랑은 단순히 재미있는 액션 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서, 법 앞에 평등하지 못한 현실을 통쾌하게 뚫어내는 이 영화는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수사극을 통해 잠시나마 고민과 스트레스를 잊고 싶다면 지금 당장 베테랑을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