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어쩔수가없다 (이병헌 연기, 박찬욱 연출, 블랙코미디 스릴러)

by 건강백서랩 2026. 1. 28.

어쩔수가없다 영화 리뷰 (이병헌 연기, 박찬욱 연출, 블랙코미디 스릴러)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자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국제 관객상 수상작입니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유만수가 갑작스러운 해고 후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그린 이 작품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고용 불안과 가장의 무게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이병헌, 손예진을 비롯한 화려한 캐스팅과 박찬욱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어우러진 문제적 영화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어쩔수가없다에서 이병헌 연기

이병헌이 연기한 유만수는 태양제지에서 25년간 근무한 숙련공 블루칼라 노동자로, 영화는 그가 아내 이미리(손예진),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바베큐 파티를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회사에서 선물받은 비싼 장어를 구우며 "다 이루었다"는 만족감을 느끼던 만수는 미국계 회사의 인수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는 담당자 앞에서 만수는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준비했던 항의 연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3개월 내 재취업을 다짐했던 만수는 13개월이 지나도록 창고형 마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합니다. 퇴직금은 바닥나고 넷플릭스 구독마저 끊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내 미리까지 치위생사로 일하게 되자, 만수의 자존심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문 제지 화장실에서 담당자 최선출(박희순)에게 무릎 꿇고 애원하다 위스키 값만 받아 쥐고 조롱당하는 장면은 그의 굴욕이 극에 달한 순간입니다. 이병헌은 이 장면에서 평범한 가장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이후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는 만수의 심리적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만수가 옥상 할머니로부터 "누군가 빠지면 공간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착안한 계획은 충격적입니다. 가짜 구인공고로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모아 자신보다 우수한 A+급 인재인 구범모(이성민), 고시조(차승원), 최선출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채용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병헌은 범모를 스토킹하며 뱀에 물리고, 범모의 아내 이아라(염혜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는 등 서툴고 우발적인 살인 시도 과정에서 보여주는 겁에 질린 표정과 떨리는 손동작으로 만수가 타고난 범죄자가 아님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범모, 아라와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 신에서 이병헌의 절박한 연기는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던 가장이 생존을 위해 점점 광기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병헌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고시조를 해안도로에서 총으로 쏘며 완전한 살인자가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떨지만, 아내 미리의 암묵적 승인을 받은 뒤 최선출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한층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9년간의 금주를 깨고 폭탄주를 마신 후 펜치로 충치를 직접 뽑고 선출의 얼굴에 깔대기를 끼워 다진 고기와 술을 부어 질식사시키는 장면은 만수의 완전한 타락을 상징합니다. 이병헌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단순한 악당이 아닌, 시스템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된 인물의 양면성을 훌륭하게 표현해냅니다.

박찬욱 연출의 블랙코미디와 사회 비판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연출과 블랙 코미디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고용 불안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상징과 미장센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전달합니다. 만수가 노동자 해고를 도끼로 목을 날리는 것에 비유했던 펜 글씨는 영화 말미 무인화된 제지 공장에서 로봇이 나무를 자르는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인간 노동의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미래를 암시합니다.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로튼 토마토 신선도 98%, 메타크리틱 스코어 86점을 기록하며 해외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예술성과 사회 비판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블랙 코미디는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면서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만수가 범모를 살해하려다 오디오 스피커 때문에 만수, 범모, 아라 셋이 서로 소리를 듣지 못하고 각자 엉뚱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자막까지 넣어 우스꽝스러움을 극대화한 연출은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선곡한 노래 '고추잠자리'의 가사와 음이 살인 장면과 묘하게 어울리며 섬뜩하면서도 웃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만수가 뱀에 물렸을 때 아라가 연극에서 배운 엉터리 응급처치를 해주는 장면이나, 경찰이 집에 찾아왔을 때 만수가 "제가 애비 노릇을 잘못했습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얼버무리는 장면도 긴장감 속에서 터져 나오는 유머의 대표적 예시입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진짜 의도는 단순한 웃음이 아닙니다. 조영욱 음악 감독이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현대음악과 고전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의 불안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마레의 'Le badinage'같은 클래식 음악은 만수의 중산층적 취향을 상징하면서도, 그가 저지르는 범죄의 잔혹함과 대비되어 더욱 소름 끼치는 효과를 냅니다. 김창완의 '그래 걷자', 배따라기의 '불 좀 켜주세요' 같은 한국 대중가요는 시대적 배경과 만수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고시조의 시체를 집 마당 사과나무 아래 묻는 장면을 통해 가족의 행복이 살인이라는 더러운 토양 위에 세워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엔딩에서 두 리트리버 시투와 리투가 사과나무 밑을 서성이자 미리가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장면은 죄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딸 리원이 부모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던 첼로 연주를 두 마리 개에게만 들려주는 장면은 순수함의 마지막 보루가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만 남아있다는 씁쓸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리원의 첼로 연주 소리가 만수가 안전 귀마개를 끼는 순간 공장 소음으로 완전히 묻히는 장면은 인간성이 산업화와 무인화 시스템에 의해 억압당하는 현실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블랙코미디 스릴러 장르와 사회적 메시지

'어쩔수가없다'는 블랙코미디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고용 불안과 가장의 무게를 다룹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눈이 시리게 웃기고 서글픈 신자유주의의 푸른 멍"(정재현), "가장(假裝)하는 가장(家長)을 기리는 연민과 조소의 폭탄주"(남선우), "어쩔 수 없다고 내세우는 자들이 만들어낸 실낙원의 통렬한 순환"(이동진) 등으로 평가하며 작품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높이 샀습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제28회 SCAD 사바나 영화제 국제 외뙤르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도 이러한 주제 의식이 국제적으로 공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만수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개연성 문제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립니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6점대를 기록하며 일반 관객들은 1년간의 실직과 가장으로서의 체면 상실만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인물이 회사에서 잘리자마자 화분으로 선출을 죽이려 하고, 죄 없는 제지 전문가들을 둘씩이나 죽이려는 설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비판받던 설정을 어느 정도 보완했으나, 주인공이 허술한 살인을 저지르고 우연적으로 혐의를 벗어나는 핵심 설정은 유지되어 현실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관객들은 만수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빌다가 조롱당했을 때 살인 충동을 느낀 것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신의 체면이 무시당하거나 조롱당했을 때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실제 사회에서도 흔하며, 만수가 과거 술을 마시고 아들을 폭행한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숨겨진 폭력성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살인을 시도하나 겁에 질리고 서툴러 하며 계속 실패하거나 얼렁뚱땅 마무리 짓는 모습에서 나오는 심리 변화는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2025년 신림동 식당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난 이후 현실이 영화를 능가했다는 평도 나오며,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개인의 선택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인식도 생겼습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정말 살인이 어쩔 수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만수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어쩔 수가 없다"라고 되뇌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