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국 상업영화 계열에서 사실상 최초로 등장한 현대 배경 퀴어 영화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연선 감독의 연출로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김고은과 노상현이라는 두 배우가 만들어낸 특별한 케미스트리와 청춘의 성장통을 진솔하게 담아낸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최초의 퀴어영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명의 연작소설 중 '재희'를 원작으로 합니다. 감독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단편이었던 이야기를 장편영화로 확장하면서 폭넓은 의미를 담을 제목을 고민했는데, 이 이상의 제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 상업영화 계열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퀴어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영화는 시선을 싹쓸이하는 과감한 스타일과 남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애티튜드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 구재희와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장흥수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서로가 이상형일 수는 없지만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모먼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합니다.
왓챠피디아에서 별점 3.8점을 기록하며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영화는 특히 김고은과 노상현 두 배우 간의 조화가 호평받고 있습니다. 영화 속 설정대로의 절친 느낌에 잘 융화되어 편하게 보기 좋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구재희 역의 김고은은 같은 해에 개봉한 파묘에 이어 이번에도 돋보이는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장흥수 역의 노상현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호불호 강한 퀴어 코드를 부담 없이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선공개 후 영화제 측은 "사회 규범의 흐름 속에서 개인과 그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면서 "감정적인 공감대와 젊음, 정체성, 그리고 사랑의 복잡한 탐험을 매혹적인 시각과 함께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국제 영화제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한국 퀴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고은연기와 노상현의 환상 호흡, 절친 케미의 완성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단연 김고은과 노상현이 만들어낸 특별한 관계성입니다. 20살 불어불문학과 오티를 떠나는 날부터 시작되는 구재희의 이야기는 파리에서 생활하다 입학한 그녀가 학생뿐 아니라 교수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당돌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지루한 새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재희는 클럽 골목에서 흥수가 남자 교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흥수는 동성애자였던 것입니다. "술이나 마셔 가자"는 제안에 "여자랑은 안 마신다"고 답하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재희는 "그럼 나랑 팀플이나 같이 할래?"라며 쿨하게 접근합니다. 학교에는 이미 소문이 퍼진 것 같았고, 흥수는 만나오던 교수에게 이별을 구하며 미국행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 돈 좀 있어? 나 미국 가서 살아야 될 거 같아"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군대나 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동기들이 흥수를 가리키며 "올리비에가 진짜 게이라고, 머리 짧은 여자 아니고"라며 수군거리던 그때, 재희는 "야 이거 내가 어제 가져왔더라"며 어젯밤 같이 시간을 보냈다는 듯 연기를 시작합니다. 재희 덕분에 위기를 넘긴 흥수는 그날 밤에도 클럽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남자 동기들의 단톡방에 재희의 알몸 사진이 공유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가슴 만져야 팔려서"라며 수군거리던 그 시각, 재희는 강의실에서 "꽉 찬 에이컵"이라며 한방에 소문을 잠재우고 강의실을 나섭니다.
이처럼 두 배우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절친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해냈습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재희의 대사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며 성장해갑니다. "미친년과 게이가 만났다. 바야흐로 애니멀 라이프의 시작이었다"는 나레이션처럼,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고 각자 남자친구도 생기며 연애 고민도 들어주곤 했습니다. 특히 베란다에서 속옷을 훔쳐가는 변태를 피해 재희의 집으로 들어간 흥수와 함께 시작되는 동거 생활은 영화의 핵심 축을 이룹니다.
청춘로맨스를 넘어선 성장 서사와 진정한 관계의 의미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단순한 청춘로맨스를 넘어 '나다움'을 찾아가는 성장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재희는 남자친구 제선우에게 "손은 많아. 괜히 너까지 와서 고생하는 거 싫어"라는 말을 듣고 서프라이즈를 준비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남자친구의 진짜 여자친구였습니다. "미안한데 쪽 팔려서 먼저 갈게요. 선우 누나라"는 말에 난처해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재희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너 강의실에서 가슴 깠잖아. 남자 애들 다 보는 앞에서. 클럽 죽순이에 매번 남자들 갈아치우는 걸로 학교에서 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너 같은 걸레랑 진지하게 만나겠냐?"는 제선우의 말은 재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한편 흥수는 수호라는 남자를 만나지만 "기타 동아리"라는 거짓말에 속아 도착한 곳은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수호를 앞에 두고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고 싶었던 흥수는 "나 욕 먹기도 처 맞기도 싫으니까 나서지 마요"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흥수를 기다리던 재희에게 준수라는 남자가 다가오고, 그렇게 재희는 원치 않는 원나잇을 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재희와 흥수는 "왜 약속을 안 지켜? 온다며? 온다고 했잖아. 온다고 했는데 안 왔잖아. 네가 내가 너 얼마나 기다렸는데"라며 서로에게 쌓였던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야 씨 남 네 남친이랑 싸울 때마다 출동하는 호구냐?"는 흥수의 말에 재희가 겨우 진정이 되고 나서, 흥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고 3일 때 좋아하던 형이 있었어. 그 형 주려고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거든. 그 형이랑 내 이름도 나오고 집 앞에서 첫 키스한 내용까지 나오는데 그걸 엄마가 본 거야. 한 마디도 안 하더라, 우리 엄마. 근데 바로 다음날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네. 엄마가 새벽에 내 방 들어와서 기도할 때마다 진짜 미치겠는데 그거라도 안 하면 엄마가 미칠까 봐 그냥 있었어." 흥수의 고백에 재희는 "죽고 싶었어?"라고 묻고, 흥수는 "아니, 살기 싫었어"라고 답합니다. 이 장면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진솔하게 보여줍니다.
감독은 이 영화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누구나 이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을 갖고 있는데, 그 시기에 '나를 더 잘 이해해 주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더 인생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로망을 담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만이 로맨스가 아니며, 우정이든 사랑이든 관계에는 여러 가지 형태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영화는 재희의 남자친구 지석이 "너 게이야? 야 너 게이야지?"라며 흥수를 폭로하려 할 때, 재희가 "오빠도 영우 오빠랑 친하잖아. 목숨 같다며? 흥수가 나한테 그런 친구야"라며 당당하게 맞서는 장면을 통해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또한 "얼마만큼 좋아해야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거든. 근데 난 보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아. 보고 싶다는 참 명확해"라는 재희의 대사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보는 내내 참 싱그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한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가려는 재희의 거침없는 모습과 남모를 상처를 안고 숨어 지내던 흥수가 서로를 만나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참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대도시라는 화려한 배경 속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외로움과 막막함을 아주 솔직하고 유쾌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며,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이 삭막한 도시의 삶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겠다는 위로를 전하는 작품입니다.